초기의 결혼 역사에서 보면,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은 그 부족의 남자들에게 소속되었다. 나중에는 한 여인이 한 번에 오직 한 남편만을 가질 수 있었다. 한번에-한-남자라는 실천 관행은 집단적인 혼잡한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첫 단계였다. 한 여자에게는 한 남자만이 허락된 반면, 그 남편은 그러한 임시적인 관계를 뜻대로 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느슨하게 규제되는 관계적-연합은 무리를 지어 사는 상태와 구별되어 한 쌍으로 사는 방향을 향한 첫 걸음이었다. 이러한 결혼 발전 단계에서는 어린아이들은 대개 어머니에게 소속되었다.
짝을 짓는 진화의 다음 단계는 집단적인 결혼이었다. 이러한 공동적 결혼 위상이 가족생활이 전개되는 과정에 끼어들었는데, 왜냐하면 한 쌍의 관계적-연합을 영구적으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결혼의 사회관례가 아직 강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매간의 결혼은 이러한 계열에 속하는 것이었는데; 한 가족의 다섯 형제들이 다른 가족의 다섯 자매들과 결혼하곤 하였다. 보다 느슨한 유형의 전(全)세계적인 공동적 결혼이 점차 진화되어 여러 유형의 집단적 결혼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적 관계적-연합은 주로 토템 사회관례에 의해서 규제되었다. 가정생활은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발전되었는데 왜냐하면 성과 결혼의 규제는 더 많은 숫자의 자녀들의 생존을 보장함으로써 부족 자체가 살아남도록 기여하였기 때문이었다.
집단적 결혼은, 보다 진보된 부족들 사이에서 일부다처제─일부다처(一夫多妻)와 일처다부(一妻多夫)─의 실천 관행이 창발하면서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일처다부는 한 번도 일반화된 적이 없었는데, 대개 여왕 또는 부유한 여자들의 경우로 제한되었다; 더욱이 여러 형제들이 한 아내를 갖는 것은 관례상 어떤 가족의 문제였다. 특권계급과 경제적인 제한 때문에, 여러 남자들이 한 아내로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한 경우라도 그 여인은 오직 한 번만 결혼할 수 있었으며, 다른 남자들은 공유되는 자손들의 “삼촌들”로서 대충 참고 지냈다.
유대인의 관습은 “죽은 형제의 대를 이어줄” 목적으로 그의 아내와 결합하도록 요구하였는데, 이것은 고대의 세계에서는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지키던 관습이었다. 이러한 관습은 결혼이 개별존재적인 관계적-연합보다는 가족의 일이었던 시대의 잔재였다.
여러 시대에 있어서 일부다처제도는 네 가지 종류의 아내를 인정하였다:
1. 예식을 치른 또는 합법적인 아내.
2. 애정을 느끼는 허락된 아내.
3. 첩, 계약상의 아내.
4. 노예 중에서 아내를 삼은 경우.
모든 아내들이 동등한 지위를 갖고 모든 자녀들도 똑같이 취급되는 진정한 일부다처제는 아주 드물었다. 대개의 경우, 심지어는 복수(複數)의 결혼에서도, 그 가정은 우두머리 아내, 지위상의 동행자에 의해서 지배되었다. 그녀만이 결혼 예식을 치렀으며, 그 신분상의 아내와 특별한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그러한 구매된 또는 지정된 배우자의 자녀들만이 상속권을 가질 수 있었다.
지위상의 아내는 반드시 사랑 받는 아내일 필요는 없었다; 초기 시대에는 대개 그렇지 않았다. 사랑 받는 아내 또는 애인은, 그 종족들이 상당한 진보를 이룩할 때까지 그리고 보다 자세히 말한다면 진화하는 부족들이 놋-사람들 그리고 아담-사람들과 섞인 이후까지 출현하지 않았다.
금기의 아내─법적 지위를 지닌 한 명의 아내─는 첩을 두는 사회관례를 만들었다. 이들 사회관례 밑에서는, 남자가 한 아내만을 가질 수밖에 없겠지만, 그러나 그는 몇 명의 첩이라도 성(性)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첩을 두는 일은 일부일처제에 이르는 디딤돌, 공공연한 일부다처제에서 벗어나는 최초의 움직임이었다. 유대인, 로마인 그리고 중국인들의 첩은 아주 흔히 아내의 하녀들이었다. 나중에는, 유대인 사이에 그러하듯, 법적 아내가 남편에게서 태어난 모든 자녀들의 어머니로 여겼다.
임신하거나 젖을 먹이는 아내와 성 관계를 갖지 못하게 하는 옛날의 금기가 일부다처제를 크게 육성시켰다. 원시 시대의 여인들은 자주 아이를 낳고 힘든 일을 하였기 때문에 빨리 늙었다. (과중한 일이 맡겨진 그러한 아내들은 아이를 갖지 않았을 경우에는 매 달마다 한 주일씩 혼자 있도록 조치된 덕분에 겨우 그럭저럭 버티었다.) 아이를 기르는 일로 자주 지쳤던 그 아내는 남편에게 보다 젊은 아내, 아이를 기르는 일과 가사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하도록 요청하곤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 얻은 아내들은 나이 많은 배우자들에 의해서 대개 환영을 받았다; 옛날에는 성적인 질투심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아내의 숫자는 오직 그들을 부양하는 남자의 능력에 의해서 제한될 뿐이었다. 부유하고 유능한 남자는 많은 숫자의 자녀들을 원하였고, 아이들의 사망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큰 가족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아내가 많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복수(複數) 아내들 대부분은 단순한 노동자, 노예를 삼은 아내에 불과하였다.
인간의 관습들은 진화하지만, 속도가 매우 느리다. 하렘의 목적은 권좌를 유지하기 위하여 강력하고도 많은 숫자의 같은 혈통의 가문을 세우는 것이었다. 어떤 지배자는 한 때 하렘을 가져서는 안 되겠다는 것과, 한 명의 아내로 만족해야겠다고 결심하였기 때문에; 즉시 자신의 하렘을 해산시켰다. 불만을 품은 아내들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갔고, 그들의 성난 친척들이 복수를 하기 위하여 그 지배자를 내몰았고 그를 즉석에서 처치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