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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본성

5. 하느님의 사랑

2:5.1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우주의 관련사들에 대한 유일한 그의 개인적 태도는 항상 신성한 애정 반응이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을 증여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는 선한 자와 악한 자에게 태양을 뜨게 하시며 온당한 자와 부당한 자들에게 비를 내리게 하신다.”

2:5.2

자기 아들들의 희생이나 또는 그의 피조 종속들의 탄원 때문에 설득되어서,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이라고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것인데, “왜냐하면 아버지 자신이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이러한 어버이로서의 애정에 대한 응답으로 하느님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주하도록 놀라운 조절자들을 보낸다. 하느님의 사랑은 보편적이다; “누구든지 올 수 있다.” 그는 “진리의 지식을 얻어 모든 사람들이 구원되게 하신다.” 그는 “누구도 멸망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2:5.3

창조자들은 사람들이 신성한 법칙들을 어리석게 위반함으로써 생기는 비참한 결과로부터 구하려는 시도를 가장 먼저 하시는 이들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아버지로서의 애정이다; 따라서 그는 때로 “우리가 그의 거룩함을 함께 하는 자가 되고,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 우리를 역경에 있게 한다.” 너희가 불같은 시련에 있는 동안에도 “우리의 모든 고통 속에서 그가 우리와 함께 고통 받고 있음”을 기억하라.

2:5.4

하느님은 죄인들에게 신성하게 다정하시다. 반역자들이 정의로움으로 돌아올 때 , 그들은 자비롭게 받아들여지며, “이는 우리 하느님은 풍성하게 용서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너희 죄악들을 지워버리는 자이며, 나는 너희 죄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어떤 사랑의 태도를 우리에게 증여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 보라.”

2:5.5

결국, 하느님의 선함에 대한 가장 큰 증거와 그를 사랑해야 되는 최극 이유는 아버지의 내주하는 선물─너희 두 존재가 영원히 하나가 될 그때를 그토록 인내하며 기다리는 조절자─이다. 비록 너희가 하느님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만일 너희가 내주하는 영의 인도를 따르면, 한 걸음 한 걸음, 한 생애 한 생애, 우주에 우주를 거쳐서 그리고 한 시대 한 시대, 너희가 우주 아버지의 파라다이스 개인성의 현존 앞에 마침내 서게 될 때까지, 틀림없이 인도될 것이다.

2:5.6

인간 본성의 한계와 너희 물질적 창조체의 장애들이 너희가 그를 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너희가 하느님을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너희와 하느님 사이에는 건너야 되는 엄청난 거리(물리적 공간)가 있다. 마찬가지로 거기에는 다리를 놓아야만 하는 영적 차이의 거대한 심연(深淵)이 존재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파라다이스 개인적 현존으로부터 너희를 물리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분리하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너희 안에 살고 계시다는 엄숙한 사실을 멈추어 숙고해 보라; 그는 자신의 방법으로 이미 그 심연에 다리를 놓았다. 그는 너희가 너희의 영원한 우주 생애를 추구할 때 너희 안에 살면서 너희와 함께 수고하기 위하여 그 자신, 그의 영을 보내 왔다.

2:5.7

나는 그토록 위대하고 동시에 그의 하급 창조체들을 들어 올리는 사명활동에 그토록 애정을 담아 헌신하는 그분을 경배하는 일이 쉽고도 기쁜 일임을 발견한다. 나는 창조에서 그리고 그것들의 통제에서 그토록 능력이 있는데도, 선함에 그토록 완전한 그리고 또한 우리에게 끊임없이 드리우는 사랑함-친절함에 그토록 신실하신 분을 당연히 사랑한다. 나는 그가 그토록 위대하고 능력이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가 그렇게 선하고 자비롭다면, 똑같이 하느님을 사랑하리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놀라운 속성들을 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본성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

2:5.8

공간 우주들의 진화에 선천적으로 있는 시간의 갖가지 어려움들과 그토록 용맹스럽게 투쟁하는 창조자 아들들 그리고 그들의 종속 행정-관리자들을 내가 바라볼 때, 나는 내가 우주들의 비교적 작은, 이들 통치자에게 크고 심오한 애정을 갖고 있음을 깨닫는다. 결국 나는, 영역들의 필사자들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우주 아버지와 신성하거나 인간인 다른 모든 존재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우리가 이 개인성들이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식별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체험은 사랑을 받는 체험에 대한 매우 직접적인 응답이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그의 최극위, 궁극위 그리고 절대라는 모든 속성들이 그로부터 없어지게 된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그를 최극으로 사랑할 것이다.

2:5.9

아버지의 사랑은 현재와 그리고 영원한 시대의 끝없는 순환에 두루, 우리를 따라온다. 너희가 하느님의 사랑 넘치는 본성을 숙고할 때, 거기에는 오직 하나의 타당하고도 자연스러운 개인성 반응이 있다: 너희는 너희 조물주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되겠고; 자녀들이 이 세상의 부모에게 주는 것과 비슷한 애정을 너희가 하느님께 그렇게 드리게 되는데; 이는 아버지, 실제 아버지, 진정한 아버지가 자기 자녀를 사랑하듯이, 그렇게 우주 아버지는 그의 피조 아들들과 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복지를 언제까지나 추구하기 때문이다.

2:5.10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현명하고 통찰력 있는 부모의 애정이다. 신성한 사랑은, 신성한 지혜와 우주 아버지의 완전 본성의 다른 모든 무한 특징들과 합일된 관계적-연합 속에서 기능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지만, 사랑이 하느님은 아니다. 필사 존재들에 대한 신성한 사랑의 가장 큰 현시활동은 생각 조절자들의 증여 안에서 보이지만, 그러나 너희의 아버지 사랑에 대한 가장 큰 계시는 이 땅에서 이상적인 영적 삶을 살았던 그의 미가엘 아들의 증여 삶 속에서 보인다. 각각의 인간 혼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개별존재화하는 이는 바로 내주하는 조절자이다.

2:5.11

사랑이라는 인간의 언어 상징을 사용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그의 우주 자녀들에 대한 신성한 애정을 묘사하라고 강요된 것이 가끔 나는 상당히 고통스럽다. 이 단어는, 그것이 비록 존중과 헌신이라는 필사 관계들에 대한 사람의 최고 개념이라 하더라도, 너무 많은 인간관계를 너무 자주 나타내기 때문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우주 창조체들을 향한 그의 비길 데 없는 애정을 나타내는데, 또한 사용되는 어떤 언어로 알려지기에는 온통 저급하고 전혀 맞지 않는다!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신성한 애정의 참된 본성과 절묘하게 아름다운 의의(意義)를 사람 마음에게 전달할 수 있는 몇 가지 숭고한 그리고 전용적인 단어를 내가 사용할 수 없음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2:5.12

사람이 어떤 개인적 하느님의 사랑을 보지 못할 때, 하느님의 왕국은 단지 선(善)한 왕국이 되고 만다. 신성한 본성의 무한한 합일성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하느님이 그의 창조체들과 가지는 모든 개인적 거래에서 지배적인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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