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이 땅에서 가졌던 모든 체험 중에서, 14살과 15살 때 가장 혹독한 시련을 맞이하였다. 자신의 신성과 운명에 대해 이미 자아-의식적으로 되기 시작한 이후, 그리고 내주하는 조절자와는 아직 많은 교통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있었던, 이 두 해 기간은 그의 사건 많은 유란시아에서의 일생 중에서 가장 쓰라린 시절이었다. 이 2년 동안의 기간은 가장 큰 시험, 실제적인 유혹을 받은 기간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소년기에서 청년기로 넘어가면서, 초기의 혼란과 청년기의 문제들에 적응하는데 있어서, 어떤 젊은 청년도 예수만큼 힘겨운 시험을 겪은 사람은 없었다.
예수가 청년기의 발전을 이룩한 중요한 이 기간은, 예루살렘 방문을 마치고 나사렛으로 돌아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마리아는 처음에는 자기 아들을 다시 찾게 된 것에 대해, 예수가 충성된 아들이 되어─한 번도 그렇지 않았던 적이 없었지만─ 집에 돌아왔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앞으로의 그의 일생에 대해 어머니가 세운 계획에, 그가 지금부터는 더욱 순종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매우 행복해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물질적인 망상과 은근한 가족적 자부심은 오래지 않아서 빛이 바래게 되었다; 얼마 가지 못하여 그녀는 더욱 완벽하게 환상에서 깨어났다. 그 소년은 점점 더 아버지와 시간을 많이 보냈고, 자기 문제들을 어머니와 상의하는 일은 점점 더 줄어들었으며, 그러는 동안에 그의 부모들은 그가 자기 아버지의 일에 대한 자신의 관계를 깊은 사색하는 일과 이 세상의 관련사들 사이에서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점점 더 이해하기가 어려워졌다. 솔직히 말해서, 그의 부모는 예수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유대 사람들에 대한 예수의 연민의 정과 사랑이 더욱 깊어갔지만, 정치적으로 임명된 제사장들이 아버지의 성전에 현존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개심은 세월이 감에 따라 더 깊어졌다. 예수는 진지한 바리새인들과 정직한 서기관들을 매우 존중하였으나,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이나 정직하지 못한 신학자들은 심히 혐오하였다; 진실하지 못한 모든 종교적 영도자들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가 이스라엘의 영도자관계를 세밀히 관찰한 후에는, 유대인들이 기대하고 있는 메시아가 될 수도 있다는 쪽으로 그가 유혹을 받은 때도 더러 있었지만, 그러한 유혹에 넘어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현자들 사이에서 이룬 그의 공훈에 대한 이야기는 나사렛 사람들을 매우 우쭐하게 했으며, 특히 그를 가르쳤던 회당 학교 선생들에게는 더 할 나위가 없었다. 한동안 모든 사람들 입에서 그의 칭찬이 자자했다. 모든 동네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지혜와 칭찬받을 만한 그의 행위들에 대해 호의를 가졌고, 장차 그가 이스라엘에서 위대한 영도자가 되도록 운명되었다; 드디어 갈릴리에 있는 나사렛에서도 실제로 위대한 선생이 나오게 되었다고 내다보았다. 그래서 그들 모두는 예수가 15세가 되어 안식일에 회당에서 정기적으로 성서를 읽을 수 있게 허락되는 그 날을 고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