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家庭) 하느님들을 경배하는 초기 종교 형태들로부터 전쟁의 하느님인 마르스에 대한 부족적 존경으로 발전하였기 때문에, 라틴 지역의 후대 종교가 그리스 그리고 브라만의 지적인 체계들 또는 몇몇 다른 민족들의 더욱 영적인 종교들보다 정치적 계율이 더 강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스도 이전 6세기에 멜기세덱의 복음인 유일신 론이 크게 부흥됨에 있어서, 너무 적은 숫자의 살렘 선교사들이 이태리로 들어갔으므로, 그들로서는 그 새로운 하느님들과 신전들의 화려한 집단과 함께 급속도로 퍼지는 에트루리아 사제신분의 영향력을 극복할 수 없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조직화되어 로마의 국가 종교가 되었다. 라틴 부족들의 이 종교는 그리스인들의 것처럼 진부하고 타락한 것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히브리인들의 것처럼 엄격하고 압제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것의 대부분은 단순한 형식과 맹세 그리고 금기들을 지키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로마의 종교는 그리스로부터 도입된 광대한 문화적 수입품들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다. 결국에는 올림피아의 하느님들 대부분이 옮겨 심어졌고 라틴의 만신에 합병되었다. 그리스인들은 가정에 있는 화로(火爐)─헤스티아가 그 화로의 처녀 여신이었다; 베스타는 가정을 돌보는 로마의 여신이었음─의 불을 오랫동안 경배해 왔었다. 제우스는 쥬피터, 아프로디테는 비너스가 되었다; 그런 식으로 올림피아의 신(神)들이 전해 내려갔다.
로마 젊은이들의 종교적 입회식은 국가에 대한 봉사를 엄숙하게 헌신하는 행사였다. 시민권에 대한 맹세와 허락은 실체 안에서 종교적 예식이었다. 라틴 사람들은 신전과 제단과 성소를 유지하였으며, 위기가 닥칠 때에는 그곳에서 계시를 받고자 하였다. 그들은 영웅들의 유골을 보관하였고 나중에는 그리스도교 아들들의 것을 보관하였다.
종교처럼 보이는 애국심의 이러한 형식적이고 냉정한 형태는 붕괴될 운명에 있었는데, 그것은 그리스인들의 매우 지적이고 예술적인 경배 체제조차도 신비적 예배종파들의 열정적이고 매우 감정적인 경배 체제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파괴적인 이 예배종파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은 하느님의 어머니를 섬기는 신비교 분파였는데, 그것은 오늘날 성 베드로 성당이 서있는 로마의 바로 그 자리에 본부를 두고 있었다.
신흥 로마 국가가 정치적으로는 정복을 하였지만 사교(邪敎)들과 예식들과 신비적 교의들 그리고 이집트와 그리스와 레반트 지역의 하느님 개념들에 의해서 역으로 정복당하였다. 수입된 이 예배종파들은 로마 국가 전체에서 계속적으로 번창하였는데, 순수하게 정치적이고 시민정부적인 이유들 때문에 신비적 교의들을 파괴하고 옛날의 정치적인 종교를 부흥시키는 일에 영웅적이고도 어느 정도는 성공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아우구스투스의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국가 종교의 사제들 중에서 한 사람은 유일하신 하느님, 모든 초자연적 존재들을 지배하는 최종적인 신(神)에 대한 교리를 전파하기 위하여 살렘 선생들이 초기에 시도하였던 것들을 아우구스투스에게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관념이 그 황제를 강하게 사로잡게 되어 그는 많은 신전들을 세웠고 아름다운 형상들로 그것들을 장식하였고, 국가적인 사제 제도를 재구성하였으며, 국교를 다시 세우고,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들 중에서 높은 사제로 지정하였으며, 황제로서 자기 자신이 최극자 하느님이라고 선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아우구스투스를 경배하는 이 새로운 종교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 유대인들의 고향인 팔레스타인을 제외한 제국의 전역에서 번창하였고 신봉되었다. 그리고 인간 하느님들의 이 시대는 공인된 그 로마 예배종파가 40명 이상의 자아를-높인 인간 신(神)들을 명부에 올릴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그들은 모두 기적적으로 태어났고 초인간적인 다른 속성들을 가졌다고 주장하였다.
점점 감소하는 살렘 신자들 집단의 마지막 저항이 진지한 전도자들의 집단인 견유학파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들은 로마 사람들에게 그들의 거칠고 몰상식한 종교 예식을 버리고, 그리스 사람들의 철학과 접촉함으로써 변경되고 오염되기 이전의, 멜기세덱의 복음을 체현하고 있는 경배의 형태로 돌아가라고 간곡하게 권유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견유학파의 주장을 거부하였으며, 개인적인 구원의 희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기분전환, 흥분 그리고 오락에 대한 열망을 만족시키는 신비주의적 교의로 빠져들어 가기를 선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