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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1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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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진화

7. 신비주의, 황홀경 그리고 영감(靈感)

91:7.1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의식을 배양하는 기법인 신비주의는 전체적으로는 훌륭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실천 관행들이 사회적인 고립을 야기하고 종교적인 광신의 지경에 달하게 되면, 그것들은 모두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과도한 신비주의가 신성한 통찰력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자기 자신의 깊은 마음에서 솟아난 것인 경우가 너무나 흔하게 있다. 필사자 마음이 그 속에 내주하는 조절자와 접촉하는 것은, 헌신적인 명상에 의해서 혜택을 받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자기 동료 창조체들에 대한 사심-없는 사명활동 안에서 전심어리고 사랑 넘치는 봉사에 의해서 점점 더 자주 수월하게 이루어진다.

91:7.2

지나간 시대들에 있었던 위대한 종교 교사(敎師)들과 선지자들은 극단적인 신비주의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느님을 아는 남자들과 여자들이었고, 자기 이웃 사람들을 사심-없이 보살핌으로써 자신들의 하느님을 최선으로 섬겼다. 예수가 자기 제자들로 하여금 잠시 동안 자기들끼리 따로 떨어져서 묵상과 기도를 하도록 시키신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는 그들이 대중들과의 접촉하는-봉사에서 지내도록 하였다. 사람의 혼에게는 영적 영양은 물론이고 마찬가지로 영적 실습이 요구된다.

91:7.3

종교적인 황홀경은 마음이 멀쩡한 상태에서 야기된 경우에는 허용이 되지만, 그러한 체험들은 깊은 영적 성격의 현시활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순수하게 감성적인 영향들로부터 야기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종교적인 개인들은, 모든 생생한 심리적 예감들과 모든 강력한 감상적 체험들을 일종의 신성한 계시 또는 영적인 교통이라고 간주해서는 결코 안된다. 참된 종교적 황홀경은 대개 심오한 외적(外的) 평온함과 거의 완전한 감정적 통제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참된 예언적 환상은 초(超)심리적 예감이다. 그러한 천상의 방문들은 허위적인 환각이 아니며, 또한 무아경(無我境)의 황홀함도 아니다.

91:7.4

인간 마음은, 잠재의식이 떠오르는 것에 대하여 또는 초의식의 충동에 대하여 그것이 민감할 때 소위 영감(靈感)이라고 불리는 것에 응답하여 작동할 수 있다. 어떤 경우이든지, 의식(意識) 내용물의 그러한 증강이 개인에게는 다소 이질적인 것으로 보인다. 제어되지 않은 신비주의적 광신(狂信)과 자유분방한 종교적 황홀경은, 통찰력에 대한 증명서, 신성한 증명서로 생각되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91:7.5

신비주의와 황홀경 그리고 영감(靈感)의 이러한 이상한 종교적 체험들에 대한 실천적 진단은 이들 현상이 한 개별존재를 어떻게 만드는 가를 관찰하는 것이다:

91:7.6

1. 더 낫고 더 완벽한 육체적 건강을 누리게 하는가.

91:7.7

2. 그의 정신적 삶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기능하는가.

91:7.8

3. 자신의 종교적인 체험을 더욱 충만하게 그리고 더욱 기쁘게 사회화하는가.

91:7.9

4. 일상적인 필사자 실존에 있어서의 평범한 임무들을 신실하게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의 매일의 삶을 더욱 완벽하게 영성화 시키는가.

91:7.10

5.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善)에 대한 사랑과 깊은 이해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가.

91:7.11

6. 현재 인지되고 있는 사회적, 도덕적, 윤리적, 영적 가치들을 보존시키는가.

91:7.12

7. 그의 영적인 통찰력 ─ 하느님에 대한 인식(認識) ─ 을 증대시키는가.

91:7.13

그러나 기도는 이러한 특별한 종교적 체험들과 실제적으로 관계적-연합되어 있지 않다. 기도가 과도하게 심미적(審美的)인 상태가 되면, 천국의 신성(神性)에 대한 더 없이 행복한 깊은 사색과 아름다움에 의해 거의 배타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에는, 사회화시키는 그것의 영향력 대부분을 잃어버리게 되며 헌신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립되게 하고 신비주의에 빠지게 하는 경향이 있다. 지나치게 사사로운 기도와 연관된 어떤 위험성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집단적인 기도, 공동체의 헌신에 의해 교정되고 예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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