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훼를 믿는 사람들과 바알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 동안 이어진 논쟁은 종교적인 신념에 있어서의 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관념상의 사회경제적 충돌이었다.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은 땅의 소유권에 대해 다른 태도를 갖고 있었다. 남부 또는 방랑하는 아라비아 부족들(야훼를 숭배하는 자들)은 땅을 양도할 수 없는 것으로─그 씨족에게 준 신(神)의 선물로─간주하였다. 그들은 그 땅이 팔리거나 저당 잡힐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야훼께서는 ‘그 땅이 내 것이니 팔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북쪽에 있는 보다 더 정착된 가나안-사람들은(바알을 숭배하는 자들) 자기들의 땅을 자유롭게 사고팔았으며 저당을 잡히곤 하였다. 바알이라는 단어는 주인을 의미한다. 바알 예배종파는 두 개의 주요 교리 위에 기초를 두고 있었는데: 첫째는, 재산의 교환과 서약 그리고 계약─땅을 사고 팔 수 있는 권리─의 확증이었다. 두 번째는, 바알─땅을 비옥하게 하는 하느님─이 비를 내리게 한다는 생각이었다. 양질의 곡식이 맺히는 것은 바알의 은혜라고 믿었다. 그 예배종파는 주로 땅에, 그것의 소유권과 비옥함에 관심을 두었다.
바알을 믿는 사람들은 대개 집과 땅과 노예를 소유하였다. 그들은 땅을 소유하는 귀족들이었고 도시들에서 살았다. 바알이 있는 곳에는 각각 하나의 신성시되는 장소와 사제 그리고 “성스러운 여인들”, 예식적인 매춘부들이 있었다.
땅에 대한 이러한 기본적인 견해 차이 외에도, 가나안-사람들과 히브리인들은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종교적 태도에 있어서 심각한 반목이 진화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논쟁은 엘리야의 시대 이전에는 하나의 명확한 종교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의욕적인 이 선지자의 시대 때부터, 그 문제는 더욱 명확해진 종교적 계통들 사이─야훼와 바알─의 투쟁거리가 되었으며 야훼의 승리로 끝났고 그 뒤를 이은 사람들은 유일신교를 추구하였다.
엘리야는 야훼-바알 논쟁을 땅에 대한 문제로부터 히브리인과 가나안-사람들의 관념에 대한 종교적인 측면으로 전환시켰다. 아합 왕이 나봇 가문의 땅을 차지할 음모를 꾸며서 그들을 죽였을 때, 엘리야는 땅과 관계되는 옛날의 사회관례들로부터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하였고 바알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대항하는 격렬한 운동을 시작하였다. 또한 이것은 도시인들에 의한 지배에 항거하는 시골 사람들의 투쟁이기도 하였다. 야훼가 엘로힘이 된 것은 주로 엘리야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 선지자는 토지 개혁자로 출발하여 신(神)을 고양시키는 일로 끝을 맺었다. 바알들은 숫자가 많았지만 야훼는 하나였다─유일신교가 다신교를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