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물리적 그리고 영적 속성들로부터 구분되는 셋째근원이며 중심의 지적 본성이 존재한다. 그러한 본성에 접촉하는 것은 어렵지만 연관─개인적은 아니지만 지적으로─할 수는 있다. 그것은, 셋째 개인의 물리적 속성들 그리고 영적 성격과 기능의 마음 차원에서 구별할 수 있지만, 이 본성은 개인성들의 식별에 대하여 독립적으로 물리적 또는 영적 현시활동으로서 기능하는 일은 결코 없다.
절대 마음은 셋째 개인의 마음이다; 그것은 영 하느님의 개인성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마음은, 기능하고 있는 존재 안에서 , 에너지, 혹은 영, 또는 그 모두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마음은 에너지 안에 선천적으로 들어 있지 않다; 에너지는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고 마음에 대해 응답할 수 있다; 마음은 에너지 위에 얹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의식이 순수한 물질적 차원 안에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마음이 순수한 영에 더해져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 이는 영이 태생적으로 의식적이고 정체성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영은 항상 지능적인데, 어떤 면에서는 마음이 있다. 그것은 이런 마음 또는 저런 마음일 수 있고, 그것이 전(前)마음 또는 초(超)마음 심지어는 영적 마음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것 그리고 아는 것과 동등하다. 영의 통찰력은 마음의 의식을, 초월하고, 초래하며 이론적으로 앞서서 일어난다.
공동 창조자는 마음의 권역, 우주적 지능존재의 영역들 안에서만 절대적이다. 셋째근원이며 중심의 마음은 무한하며; 그것은 우주들의 우주의 활동적이고 기능하는 마음 순환회로들을 철저하게 초월한다. 일곱 초우주들의 마음 자질은 일곱 주(主) 영들, 공동 창조자의 1차 개인성들로부터 기인된다. 이들 주(主) 영들은 조화우주 마음으로서 대우주에 마음을 분배하며, 너희 지역우주는 조화우주 마음의 오르본톤 유형의 네바돈 변형으로 가득 퍼져있다.
무한 마음은 시간을 무시하며, 궁극적 마음은 시간을 초월하며, 조화우주 마음은 시간의 제약을 받는다. 그리고 공간에서도 그러하다: 무한 마음은 공간으로부터 독립되지만, 무한으로부터 마음의 보조 차원들로 강하할 때, 지성은 공간의 사실과 한계들을 점점 더 고려해야만 한다.
조화우주 마음이 영에 응답하듯이, 조화우주 기세는 마음에 응답한다. 영은 신성한 목적이고 그리고 영 마음은 행동하는 신성한 목적이다. 에너지는 사물이고, 마음은 의미이며, 영은 가치이다. 심지어 시간과 공간 안에서도 마음은 에너지와 영 사이의, 영원 안에서 상호 친족관계임을 암시하는, 그러한 상대적 관계들을 확립한다.
마음은 영의 가치들을 지능의 의미들로 변형시키며; 의지작용은 물질적 그리고 영적 권역들 모두에서 마음의 의미들이 열매를 맺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파라다이스 상승은 영, 마음 그리고 에너지에 있어서 상대적이고 차별적인 성장을 포함한다. 개인성은 체험적 개별존재성의 이들 요소의 통합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