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영주의 본부는 그 당시의 페르시아 만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후대의 메소포타미아 지구(地區)와 일치되는 곳이었다.
그 시대의 메소포타미아의 기후와 지리적 조건은 영주의 참모진과 그들의 보좌관들이 일하기에 모든 면에서 유리한 상태에 있었고, 그것은 그 이후 널리 알려지고 나서 종종 맞이했던 조건과 매우 달랐다. 원시 유란시아인 들로 하여금 문화와 문명에 있어서 특정한 초기 진보를 이룩하게 하기 위해 계획된 자연적인 환경의 일부분으로써 그러한 순조로운 기후가 반드시 필요하였다. 그 시대의 가장 큰 과업의 하나는, 사람들이 나중에 평화를-사랑하는, 집에-거주하는 농부로 진화하리라는 희망과 함께, 사람들을 사냥꾼으로부터 목자(牧者)로 변환시키는 것이었다.
유란시아에 있는 행성영주의 본부는 새로 조성되고 발전이 이루어지는 구체에 있는 전형적인 장소였다. 영주가 정착한 장소의 중심부는 매우 단순한 모습이었지만 아름다운 도성이었고 40피트에 달하는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세계적인 문화 중심지는 달리가스티아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달라마시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 도성은 10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유형 참모들로 구성된 10개 의회의 본부 건물들이 각 구역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도성의 가장 중심부에는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성전이 있었다. 영주와 그의 연관-동료들의 행정-관리적 본부는 성전에 바로 이어서 배열된 12개의 회관에 배치되어 있었다.
달라마시아에 있는 건물들은 모두 단층이었고, 2층으로 되어 있는 위원 본부와, 그리고 규모는 작지만 높이가 3층으로 되어있는 만유의 아버지의 중앙 성전만이 예외였다.
그 도성은 건물 재료─벽돌─에 있어서 그러한 초기 시대로서는 가장 훌륭한 실천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돌과 나무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주변에 있는 민족들의 집 건물과 마을 고안건축은 달라마시아의 견본에 따라서 크게 발전하였다.
영주의 본부 근처에는 모든 색깔과 계층의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그리고 영주의 학교에 처음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가까운 곳에 있는 이 부족들로부터 모집되었다. 달라마시아에 있는 이 초기 학교들은 비록 미숙한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시적인 그 시대의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제공하였다.
영주에게 소속된 유형 참모진들은 주변에 있는 부족들 중에서 우월한 개별존재들을 쉬지 않고 모았으며, 그 학생들을 훈련시키고 영감(靈感)을 불어넣은 후에는, 그들 각각의 민족들에게 선생과 영도자들이 되도록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