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환희와 상응하는-미소는 음악만큼 보편적이다. 환희와 웃음에 상응한 모론시아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있다. 상승하는 삶은 일과 놀이─임무로부터의 해방─사이에서 거의 똑같이 나뉘어 있다.
천상의 이완-휴식과 초인간적 유머는 그것들의 인간적 동의어와 매우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그 둘 모두의 한 형태에 실재적으로 빠져 있다; 이상적인 유머가 유란시아에서 너희에게 해줄 수 있는 것과 동일한 것을 우리들의 상태에서, 우리를 위해 실제로 성취한다. 모론시아 동행자들은 능숙한 놀이 후원자들이며, 그들은 복귀 지도자들에 의해 가장 훌륭하게 도움을 받는다.
만약에 그들이 유란시아에 있는 더욱 높은 익살꾼들과 비슷하였다면, 변화와 이완-휴식에 대한 이 지도자들, 모론시아 그리고 영 영역들의 고양된 유머의 이 봉사자들의 기능에 대한 개념을 전달하려는 노력에서 그것이 지극히 거칠고 어느 정도 불행한 방법이라 할지라도, 복귀 지도자들의 기능을 너희가 아마도 잘 납득하였을 것이다.
영 유머에 대해 논의함에 있어서, 먼저 너희에게 그것이 무엇이 아니다 라는 점을 말하겠다. 영 농담은 연약하고 잘못된 불행들에 대한 강조의 티가 결코 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신성의 영광과 정의(正義)에 대한 모독적인 것도 아니다. 우리들의 유머는 깊은 이해에서의 일반적인 세 가지 차원을 포옹 한다:
1. 회상하는 농담들. 어떤 사람의 투쟁, 갈등,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두려움, 그리고 종종 바보스럽고 어린아이 같은 갈망으로 인한 체험 안에 있는 과거의 에피소드들을 기억함으로써 나오는 우스갯 말. 우리에게 있어서, 이 위상의 유머는 기억 재료를 위하여 과거에서 끌어오는 깊게-자리하고 오래 머무르는 능력으로부터 나오며, 그 자료로 즐겁게 운치를 내거나 아니면 현재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한다.
2. 시사 유머. 그렇게 자주 우리에게 심각한 관심을 가지게 한 많은 것에 대한 무의미함, 우리들의 심각한 개인적 갈망 대부분이 사소함을 발견할 때의 기쁨. 우리가 미래의 확실성을 위하여 현재의 갈망들을 최고로 감소시킬 수 있을 때 우리는 유머의 이 위상을 가장 좋아한다.
3. 예언적 기쁨. 이 유머어의 위상을 상상하는 것이 필사자들에게는 아마 어려운 일이겠지만, 우리는─영들과 모론시아인들 뿐만 아니라 필사자들에게도─“모든 것들이 선을 위하여 함께 작용함”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독특한 만족감을 얻는다. 천상의 유머의 이러한 양상은 우리 상급자들의 애정 있는 보살핌에 대한 그리고 우리 최극 지도자들의 신성한 안정성에 대한 우리들의 신앙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영역들의 복귀 지도자들은 다양한 계층들의 지능존재들의 높은 유머를 묘사하는 일에만 배타적으로 관련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또한 기분전환, 영적 레크리에이션과 모론시아 오락에 대한 지도에도 종사한다. 그리고 이것과 관련하여 그들은 천상의 거장과 긴밀하게 협동한다.
복귀 지도자 그들은 창조된 집단이 아니다; 그들은 하보나 원주민들로부터 아래로는 공간의 메신저 무리들 그리고 시간의 사명활동하는 영들을 거쳐 진화 세계들로부터의 모론시아 진보자들에 이르기까지의 존재들을 포함하는 모집된 단체이다. 모두가 지원자들인데, 생각 변화와 마음 휴식의 성취에서 자기 동료들을 돕는 일에 애쓰며, 그러한 태도들이 고갈된 에너지들을 회복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유익하기 때문이다.
달성의 노력들로 인하여 부분적으로 고갈되었을 때, 그리고 새로운 에너지 보충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동안, 다른 날들과 시대들의 법규들을 다시 지키며 사는 데 있어서 수긍이 되는 기쁨이 있다. 종족 또는 계층의 초기 체험들은 편안하게 추억된다. 그리고 그것이 이 거장들이─그들은 존재의 덜 체험된 상태 또는 발달에 있어서의 이전 상태에 대한 기억으로 되돌아가도록 돕고 있다─복귀 지도자들이라고 불리는 정확한 이유이다.
선천적인 창조자들, 따라서 자동으로 자아-회복하는 이들, 그리고 자신들의 모든 반응에서 항상 그리고 영원하게 철저히 사무적인 힘 중심과 물리통제자와 같은, 어떤 높은 특별한 유형의 창조체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존재들은 이러한 종류의 복귀를 즐긴다. 기능적 임무의 긴장감에서의 이 주기적 해제는 우주들의 우주에 두루 모든 세계들에서의 삶의 정해진 한 부분이지만 파라다이스 섬에서는 그렇지 않다. 중앙 거주지의 토착적인 존재들은 고갈의 여지가 없고, 그러므로 재(再)-에너지화에 관련이 없다. 그리고 영원한 파라다이스 완전의 그러한 존재들에게 있어서는, 진화적 체험들에 대한 그러한 복귀가 있을 수 없다.
우리들 대부분은 비교적 낮은 실존 단계들을 통하여 또는 우리 계층들의 진보적 차원들을 통하여 올라왔으며, 우리들이 초기에 체험한 어떤 에피소드들을 뒤돌아보는 것은 상쾌한 일이고 어느 정도 즐거운 일이다. 어느 존재의 계층에 있어서 오래된 그리고 마음의 기억 속에 가물거리는 것을 깊이 사색하는 데에는 편안함 있다. 미래는 갈등과 발전을 의미 한다; 그것은 일과 노력과 성취가 있다는 증거이지만; 어떤 것들에 대한 과거의 위치는 이미 정복되었고 성취되었다; 과거의 깊은 사색은 흥겨움에 가까운 마음의 모론시아 상태와 영 환희를 유발시키는 이완-휴식과 그러한 태평스러운 복습을 허락한다.
심지어는 필사자의 유머도 그것이 어느 누군가의 현재 발달 상태 바로 아래에 있는 그들에게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들을 묘사할 때, 또는 그것이 일반적으로 가정된 열등자들과 연관되는 체험들로, 누군가 가정된 우월자들이 떨어져 피해자가 되는 것을 묘사할 때 가장 풍성하게 된다. 유란시아에 있는 너희는 너희의 유머와 혼동을 일으킬 정도로 저속하고 고약한 것들 대부분을 허용해 왔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너희는 비교적 유사한 유머 감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축하를 받을 만하다. 너희 종족들 중 일부는 그것의 풍부한 특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자신들의 이 세상 생애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 분명히 너희는 유머의 기법에 있어서 많은 것을 너희 아담의-유산으로부터 받아들였는데, 음악이나 예술보다도 훨씬 더 그러하다.
사타니아 전체는, 유희의 기간 동안, 거기에 거주하는 자들이 실존의 낮은 단계의 기억들을 새롭게 소생시킬 때, 유란시아로부터 온 복귀 지도자 무리단의 유쾌한 유머에 의해 교화된다. 우리는 천상의 유머 감각을 항상 소유하고 있는데, 심지어는 가장 어려운 임무에 임하고 있을 때에도 그러하다. 그것은 어느 존재의 자아-중요성 자각의 과도한 발달을 피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각 계층의 심각한 임무로부터 휴식을 취할 때를 제외하고는, 우리는 너희가 “재미있게 논다”라고 말하듯이, 그렇게 유머의 고삐를 자유롭게 풀어놓지는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자아-중요성을 배가하도록 유혹 받을 때, 만약 우리가 우리의 조물주들의 위대함과 장엄함의 무한성에 대하여 잠시 멈추어 깊이 생각한다면, 우리 자신의 자아-영광은 터무니없이 어처구니없는 것이 될 것이며, 오히려 유머에 가까울 것이다. 유머의 기능들 중의 하나는 우리 자신의 심각성을 줄여주도록 우리 모두를 돕는 것이다. 유머는 자기 고양(高揚)에 대한 신성한 해독제이다.
유머의 이완-휴식과 기분전환에 대한 필요성은 위를 향한 자신들의 갈등 속에서 지속적인 긴장감과 관련되어 있는 상승하는 존재들의 그 계층들에게 가장 크다. 삶의 양 극단들은 익살스러운 기분전환을 거의 필요하지 않다. 원시인들은 그것에 대한 능력이 없으며, 파라다이스 완전의 존재들은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 하보나의 무리는 본성적으로 지극히 행복한 개인성들의 유쾌하고 상쾌한 모임이다. 파라다이스에서는 경배의 본질특성이 복귀 활동들에 대한 필요성을 제거한다. 그러나 파라다이스 완전의 목표에 훨씬 못 미치는 상태에서 생애를 시작하는 그들 가운데에는, 복귀 지도자들의 사명활동을 위한 넓은 장소가 있다.
더욱 높은 필사 종족들일수록, 긴장감이 더 크고 유머에 대한 능력이 더 크며 그것에 대한 필요성도 그러하다. 영 세계에서는 그 반대이다: 우리가 더 높이 올라갈수록 복귀 체험들에 대한 기분전환이 점점 덜 필요하다. 그러나 파라다이스로부터 세라핌천사 무리로 영 일생의 단계를 낮출 때, 환희의 임무와 명랑함의 사명활동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된다. 이전의 체험들의 지능적 상태에 대한 주기적 복귀의 원기 회복을 가장 필요로 하는 존재들은 인간 종족들의 더 높은 유형 , 모론시아인, 천사, 그리고 물질아들들이며, 비슷한 유형의 모든 개인성들도 그러하다.
유머는 발전적 진보와 고귀한 성취를 위한 격렬한 갈등과 관계적-연합하여 지속적이고 심각한 자아-응시의 단조로움으로 기인된 과도한 압박감이 조성되는 것을 방지하는 자동 안전장치로서 기능해야만 한다. 또한 유머는 사실의 또는 진리의 예기치 않은 영향의, 굳어버리고 완고한 사실과 유연하고 항상-살아있는 진리의, 충격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다음에 직면할 것에 결코 확신할 수 없는, 필사자 개인성은, 상황의 예기치 못하는 본성이 사실이 되는지 또는 진실이 되는지를, 유머를 통하여─요점을 보고 그리고 통찰을 성취함으로─신속하게 파악한다.
유란시아의 유머는 매우 조잡하고 가장 비예술적인 반면, 하나의 건강 보험으로서 그리고 감정적 압박감에 대한 해방자로서 귀중한 목적을 봉사하며, 그리하여 해로운 신경 긴장 상태와 과도하게 심각한 자아-응시를 예방한다. 유머와 놀이─이완-휴식─은 앞으로 나가는 노력의 반응이 아니다; 그것들은 항상 뒤를 돌아보는 것의 반향, 과거에 대한 회상이다. 심지어는 현재의 너희가 그러하듯 유란시아에서도, 너희가 더 새롭고 더 높은 지적 수고들의 노력을 잠시 동안 중지하고서 그리고 너희 조상들의 좀 더 단순한 일들로 되돌아갈 때, 너희는 항상 그런 것들이 활력을 되찾게 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유란시아인의 유희적 삶의 원칙은 철학적으로 건전하다, 그리고 하보나 순환회로들을 거쳐 파라다이스의 영원한 해변에 이르기까지 너희의 상승하는 삶에 두루 계속하여 적용된다. 상승하는 존재들로서 너희는 모든 이전의 더 낮은 실존에 대한 개인적 기억을 소유하고 있으며, 과거에 대한 그러한 정체성 기억들이 없다면 현재의 유머, 필사자 웃음 또는 모론시아 환희에 대한 기본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현재의 기분전환과 오락을 위해 기본을 제공하는 것은 과거 체험에 대한 이 회상(回想)이다. 그리하여 너희는 너희의 긴 모론시아와, 그 다음의 점증되는 영적 생애에 두루 너희의 이 땅에서의 유머와 상응한 천상의 것들을 즐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상승하는 필사자 개인성의 영원한 부분이 되는 하느님의 그 부분(조절자)은, 시간과 공간의 상승하는 창조체들의 즐거운 표현, 영적인 웃음마저도 신성의 조화 음(音)을 바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