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기능구조적인 동시에 활력적─물질적이며 영적─이다. 유란시아 물리학자들과 화학자들은 식물 그리고 동물 생명의 원형질 형태들에 대한 납득에 있어서 계속 진보를 이루겠지만, 그들은 결코 살아있는 유기체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생명은 모든 에너지 현시활동들과는 다른 어떤 것이다; 물리적 창조체들의 물질적 생명이라도 물질 속에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물질적 사물들은 독립적인 실존을 누릴 수 있겠지만, 생명은 생명으로부터만 발생된다. 마음은 오직 이전-실존 마음으로부터만 유래될 수 있다. 영은 영 선조(先祖)들로부터만 기원된다. 창조체가 생명의 형태들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오직 창조자 개인성 또는 창조적 기세만이 활성화시키는 살아있는 섬광을 제공할 수 있다.
생명운반자들은 살아있는 존재들의 물질적 형태들 또는 물리적 원형틀들을 조직할 수 있지만, 영은 생명의 최초 섬광을 제공하고 마음 자질을 증여한다. 생명운반자들이 그들의 구원자별 세계들에서 조직하는 실험적 생명의 살아있는 형태들이라도 번식 힘은 항상 결여되어 있다. 생명 공식들과 생명의 원형틀들이 정확하게 조합되고 알맞게 조직화 되었을 때, 생명운반자의 현존은 생명을 시작시키기에 충분하지만, 그러한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들은 필수적인 두 속성들─마음 자질과 번식 힘─이 결여되어 있다. 동물 마음과 인간 마음은 지역우주 어머니 영의 선물인데, 일곱 보조 마음-영들을 통하여 기능한다, 반면에 재생산할 수 있는 창조체 능력은 생명운반자들에 의해 개시된 선조 생명 원형질에게 우주 영이 구체적이고도 개인적으로 나누어준 것이다.
생명운반자들이 생명의 원형틀들을 설계하고, 그들이 에너지 체계들에 대한 조직한 후에, 추가적인 현상이 반드시 발생되어야만 한다; “생명의 숨결”이 생명 없는 이 형체들 속으로 주입되어야만 한다. 하느님의 아들들이 생명의 형태들을 만들 수 있지만, 생명을 일으키는 섬광을 실제적으로 기여하는 이는 하느님의 영이다. 그리고 그렇게 주입된 생명을 다 쓰면, 그러면 다시 남아있는 물질적 몸체는 죽은 물체가 된다. 증여된 생명이 소진되었을 때, 몸체는 생명운반자들에 의해 그들이 그러한 에너지-물질의 가시적인 관계적-연합을 이끌어 내는 생명 자질수여를 위한 과도기 매체로서 봉사하도록 빌려졌던, 물질적 우주의 품속으로 되돌아간다.
생명운반자들에 의해 식물과 동물에게 증여된 생명은 식물이나 동물이 죽었을 때 생명운반자들에게 되돌아가지 않는다. 살아있는 그러한 물체로부터 떠나가는 생명은 정체성도 없고 개인성도 없다; 그것은 개별적으로 죽음에서 살아남지 않는다. 그것이 실존하던 동안 그리고 그것이 물질로 된 몸체 속에 머물렀을 때, 그것은 변화를 겪는다; 그것은 에너지 진화를 겪어가며 우주의 조화우주 기세의 한 부분으로서만 살아 남는다; 그것은 개별적 생명으로 살아남지 않는다. 필사 창조체의 생존은 필사자 마음속에 있는 불멸 혼의 진화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우리는 생명을 "에너지"와 "기세"로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둘 모두 아니다. 기세-에너지는 다양한 중력 반응이다; 생명은 그렇지 않다. 원형틀은 모든 중력-반응 의무들을 이미 다 마친 에너지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역시 중력에 반응하지 않는다. 생명은, 그렇게, 어떤 원형틀-그렇지 않았다면 분리된 체계인─물질적, 마음적 또는 영적 에너지 배열의 생기(生氣)를 구성한다.
진화하는 행성들에는 우리들에게 전체적으로 분명하지는 않는, 생명의 합성과 관련된 어떤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생명운반자들의 전기화학적 공식의 물리적 조직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만, 생명-활성화 섬광의 본질과 근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납득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생명이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통하여 그리고 영에 의해 흐르는 것을 안다. 주(主) 영들이, 모든 창조체들에게 쏟아 부어지는 생명의 강의 칠중(七重) 통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행성에 생명이 증여되는 최초의 에피소드에 감독하는 주(主) 영이 참여하는 그 기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자신하기로는, 옛적으로 늘 계신이 역시 새로운 세계에서의 이 생명 개시에 어떤 역할을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한 본질을 전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주 어머니 영이 생명 없는 원형틀들을 실재적으로 생명을 주고 그렇게 활성화된 원형질에게 유기체적 번식의 특권을 나누어 준 것을 안다. 우리는 이 세 가지가, 때로는 시간과 공간의 최극 창조자들로 정의되는, 칠중 하느님의 차원들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유란시아 필사자들─단순하게 개념이 아버지 안에 선천적이고, 아들 안에서의 표현이며, 영 안에서의 생명 실현화라는 것─보다 더 알지 못한다.
[감독하는 계시무리단의 멜기세덱 우두머리의 요청에 의하여, 이러한 능력으로 유란시아에 관찰자로 머물고 활동하는 보론다덱 아들에 의해 쓰여 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