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북쪽에 있는 갈릴리로 갔었기 때문에, 요한은 자기가 남쪽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고 느꼈다. 따라서 3월 3일 일요일 아침에 요한과 나머지 제자들은 남쪽으로 그들의 여행을 시작하였다. 그 동안에 요한의 직계 제자들 중 사분의 일은 예수를 찾아서 갈릴리로 떠났다. 그렇게 된 데에는 요한에 대해 혼동을 일으킨 슬픈 일이 있었다. 그는 다시는 그가 예수에게 세례를 주기 이전에 행했던 것과 같은 설교를 하지 않았다. 그는 어쩐지 도래할 왕국에 대한 책임을 더 이상 질 필요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자신의 일은 거의 완결된 것 같이 느껴졌으며; 마음 둘 곳을 잃었고 외로웠다. 그러나 그는 설교를 하고 세례를 주면서 남쪽으로 여행하였다.
아담이라는 마을 가까이에서 요한은 여러 주간 동안 머물렀으며, 헤롯 안티파스가 다른 사람의 부인을 부당하게 취한 것에 대해 이곳에서 기억에 남을 공격을 하였다. 이 해(서기 26년) 6월경에, 요한은 1년 전에, 도래할 왕국에 대한 자신의 설교를 시작하였던 곳인, 요단강의 베다니 개울가로 돌아와 있었다. 예수께 세례를 베푼 이후의 주간들 중에는, 요한의 설교 성격이 점차 보통 사람들을 위한 자비의 선포로 바뀌어 갔으며, 반면에 그는 다시 격렬한 태도로 부패된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 통치자들을 공공연히 비난하였다.
요한은 헤롯의 행정구역에서 설교를 하였는데, 헤롯 안티파스는 그와 그의 제자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경계하게 되었다. 또한 헤롯은 자신의 국내 관련사들에 대한 요한의 공개적인 비난에 화가 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헤롯은 요한을 감옥에 가두기로 결정하였다. 따라서 6월 12일 이른 아침, 군중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또 세례 주는 것을 보기 위하여 모여들기 전에, 헤롯의 부하들이 요한을 체포하였다. 여러 주가 지나도 그가 석방되지 않게 되자, 그의 제자들은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흩어졌으며, 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추종자들과 합세하기 위해 갈릴리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