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안에서 되돌아가면, 아버지가 심오한 자아-분배의 원칙을 개시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우주 아버지의 자아없는, 사랑하고 있는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본성 안에는, 그가 증여하거나 위임하기에 불가능하다고 분명하게 발견한 오직 그 힘들과 그 권한에 대해서만 자신을 그 실행으로 남겨두는 그 어떤 것들이 선천적으로 있다.
우주 아버지는 모든 다른 창조자 또는 창조체에게 증여될 수 있었던 자신의 모든 부분을 처음부터 자신으로부터 벗어버렸다. 그는 위임될 수 있는 모든 힘과 모든 권한을 자신의 신성한 아들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연관된 지능체들에게 위임해 왔다. 그는 건네줄 수 있는 행정-관리적 권한의 모든 특권을, 그의 주권자 아들들에게, 그들의 각 우주들 안으로, 실재적으로 건네주었다. 지역우주의 관련사들에 있어서, 그는 영원한 아들이 기원적인 그리고 중앙에 있는 우주 안에서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주권자 창조자 아들 각각을 완전하고 유능하며 권위 있게 만들어 왔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 그리고 자기 속성 전체를, 모든 방법으로, 모든 시대에, 모든 장소에서, 그리고 모든 자들에게, 그리고 그의 중앙 내주를 제외한 모든 우주에서 그가 자신을 벗을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것을, 개인성 소유의 존엄성과 거룩함과 함께 내어주었고, 실재적으로 증여하여 왔다.
신성한 개인성은 자아-중심적이 아니다; 자아-분배와 개인성의 공유는 신성한 자유의지 자아신분을 특징짓는다. 창조체들은 다른 개인적 창조체들과 관계적-연합을 갈망한다; 창조자들은 그들의 우주 자녀들과 신성을 공유하려고 마음이 움직이게 된다; 무한자의 개인성은, 두 조화-협동 개인성, 영원한 아들과 공동 행위자와 함께 존재의 실체성과 자아의 동등성을 공유하는, 우주 아버지로서 드러난다.
아버지의 개인성과 신성한 속성들에 관한 지식을 위하여 우리는 항상 영원한 아들의 계시에 의존할 것인데, 왜냐하면 창조의 공동 행위가 실행되었을 때, 신(神)의 셋째 개인이 개인성 실존으로 떠오르고 자신의 신성한 부모들에 대한 병합된 개념들을 실행하였을 때, 아버지는 분별불가 개인성으로서, 존재하기를 중단하였기 때문이다. 공동 행위자가 존재로 나오는 것과 함께 그리고 창조의 중앙 핵심의 물질화는, 어떤 영원한 변화들이 발생되었다. 하느님은 자신의 영원한 아들에게 절대적 개인성으로서 자신을 주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무한성의 개인성”을 자신의 오직하나-낳은 아들에게 증여한 반면, 그 둘 모두는 무한한 영에게 그들의 영원한 연합의 “공동 개인성”을 증여하였다.
유한 마음의 개념을 벗어나는 이들 그리고 다른 이유들 때문에, 그것이 영원한 아들 안에서 우주적으로 계시되고, 아들과 함께 무한한 영 안에서 우주적으로 활동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인간 창조체가 하느님의 무한한 아버지-개인성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느님의 파라다이스 아들들이 진화하는 세계들을 방문하고 때로는 심지어 필사자 육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그곳에 거주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 증여들이 필사 사람으로 하여금 신성한 개인성의 본성과 성격 중 일부를 실재적으로 알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그 행성 구체들의 창조체들은 이 파라다이스 아들들의 증여들을 아버지와 아들과 영에 관한 확실하고도 믿을만한 정보로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